ㆍ내가 본 기업계 / 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낸 이계안 전 민주당 의원은 “경제가 성장했다지만 누굴 위한 성장인지 모르겠다. 성장의 중심에 있어야 할 사람은 어디 갔고, 대가는 어떻게 됐는가”라며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 노력에 의문을 표시했다. “기업들은 원천적으로 노동과의 대면을 꺼려한다”는 직설적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6년 전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제17대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수원시 일자리 TF팀장을 맡고 있는 그를 지난 1일 만났다.


- 대기업은 호황인데 일자리는 좀체 늘지 않는다. 대기업을 경영해본 입장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1987년 6·29선언 이후 기업들의 투자 패턴이 바뀌었다. 생산요소로서 인력을 투입해 생산량 늘리는 성장을 지양하고, 자본장비율을 높이는 투자가 늘었다. 장치산업, 자동화산업은 투자하는 동안에는 일자리를 유발하지만 완공되면 상당수가 사라진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면 일자리가 바로 늘어나는 양상이 아닌 것이다. 서산 중화학단지에 3조원을 투자해도 사람은 2000~3000명만 증가한다. 게다가 산업별 중복·과잉투자로 더 이상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도 한계가 왔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새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있던 걸 없애면서 만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늘릴 수 없다.”

 

- 기업은 인건비가 올라서 어쩔 수 없다고도 하는데.

“인건비가 높아진 건 맞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임금 비율만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87년 당시 서울 강남에서 3800만원하던 전용면적 25.7평 아파트가 지금은 10억원이 훨씬 넘는다. 월급 모아 1년에 2평 사기도 힘든데, 구매력으로 환산해보면 인건비가 결코 많이 올라간 것 같진 않다.”

 

- 한국자본주의의 성숙 때문인가. 노동운동과도 관계 있나.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조가 늘고 파업이 생기면서 노동쟁의를 막기 위해 인건비를 외주화해 경비화했다. 같은 현대차 생산라인에서 일하지만 하도급을 준다. 직접 파업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났다. 현대차 아산공장에 가보니 냉연강 넣으면 의장할 때까지 사람은 그냥 보는 거더라. 다 로봇이 한다. 다른 부분도 끊임없이 자동화됐다. 서울의 지하철을 보라. 종이표마저 없어졌다. 5~8호선은 무인시스템도 가능하다고 한다. 2006~2007년 영국에서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데 왜 매표소를 자동화하느냐는 합의가 있었다. 직원들이 일부러 나와 표를 팔기도 했다.”

 

- 공장의 해외이전도 국내 일자리를 줄인다.

“자본이동성이 노동보다 훨씬 높다. 자동화를 하다가 안되니 공장 자체를 밖으로 옮겼다. 자동차는 물론 가전, 조선, 경공업 등도 중국, 인도, 미국 등지에 공장을 지었다. 경쟁력 확보라는 핑계로 국내 투자는 하지 않은 것이다.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면서 소수 관리자만 데려갔다. 이른바 3D 업종은 미스매칭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들어오고 청년일자리 문제해결은 갈수록 어렵게 됐다.”

 

- 원·하청 관계도 중소기업 일자리에 영향이 크지 않나.

“인력을 경비로만 따지면서 대기업이 하청업체 쥐어짜는 방식이 심해졌다. 삼성만 해도 납품업체 사장이 좋은 차 타고 다니면 단가를 깎는다고 들었다. 하청업자는 자기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숙련공을 비숙련공으로, 임시직을 산업연수생으로 쓰면서 중소기업에는 명함 팔 만한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노동 이동도 어렵다. 한번 중소기업에 있으면 못 빠져나가기 때문에 취업재수, 삼수를 하게 된다.”

 

-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비정규직은 불안정한 대신 위험비용을 더 줘야 하는데 유연성은 있으면서 인건비도 안 주는 식이다. 비정규직을 쓰려면 값을 더 많이 치러 부담을 져야 한다.”

 

- 정부나 대기업은 늘 상생협력을 강조하는데.

“명절 때 자재대금을 어음으로 줄 걸 현찰로 줬다고 자랑하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다. 1차업체는 현금 받고 2차업체에 어음으로 줘 버린다. 사업모델을 안고치면 바꾸기 어렵다. 87년 이후 30대 그룹에 들어간 게 웅진과 STX뿐이다. 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역할을 못하고 있다.

아이폰과 갤럭시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라. 아이폰을 통해 수많은 중소기업이 생기지만 삼성은 자기가 다 관여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 나와도 벤처들이 크기 어렵다. 현대차도 중소기업과 같이 개발한 부품 특허를 자기 걸로 한다. 중소기업에 인재가 갈 수 없는 구조다. 청년 일자리를 위해 새 벤처를 키워야 하는데 이런 틀을 못 바꾸면 어렵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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